[전민우의 마음도장] 두려움의 조각 — 15초, 의심을 먼저 깨부숴라


  

내 안의 의심을 격파할 때, 송판은 비로소 깨진다

경기장 전광판의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남은 시간은 단 15초. 모든 경기의 정점인 결승전 무대. 앞선 주자들의 화려한 성공과 뼈아픈 실패로 전광판의 순위는 요동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내가 준비한 최고 난도의 회전격파 단 한 번이다. 이 기술의 성공 여부에 따라 메달의 색깔이, 지난 수년간 흘린 땀방울의 가치가 결정된다.

 

눈앞에는 공중에 높게 솟은 격파물이 기다리고 있지만, 숨을 고를 여유조차 없다. 지금 당장 발을 내디뎌야 한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본능적인 경고음이 울린다. '디딤발이 미끄러지지 않을까?', '축이 흔들려 회전 각도가 모자라면 어쩌지?' 시간제한이 주는 압박감,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중압감이 교차하는 찰나의 순간, 경기장의 응원 소리가 선수의 심장을 두드린다.

 

인간의 뇌는 위협을 감지하면 생존을 위해 '공포'를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 단단한 송판에 온몸을 던지고, 공중에서 수평과 수직의 축을 비틀며 회전하는 고난도 기술은 뇌의 가장 원초적인 안전장치, 즉 공포를 담당하는 편도체를 건드리는 일이다. 정상적인 뇌라면 부상과 실패를 피하기 위해 몸을 움츠리라고 명령하기 마련이다.

 

특히 '순위 결정'이라는 외부적 보상과 '시간 제한'이라는 환경적 압박이 동시에 몰려오는 결승전 상황에서는 뇌가 순간적으로 과부하 상태에 빠지기 쉽다.

 

과거 스포츠 심리학에서는 긴장감이 높아질수록 수행 능력이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변한다는 '역U자 가설'로 이를 설명하곤 했다. 하지만 현대 스포츠 심리학의 '카타스트로피(Catastrophe) 이론'은 극한의 중압감 속 선수의 심리를 전혀 다르게 분석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적당한 신체적 긴장은 몸을 깨우는 윤활유가 되지만, 여기에 "반드시 이겨야 한다"거나 "실패하면 끝장"이라는 인지적 불안(Cognitive Anxiety)이 결합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불안이 통제 불가능한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선수의 수행 능력은 완만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절벽 끝에서 떨어지듯 한순간에 급격한 '추락(Choking)'을 맞이하게 된다.

 

팽팽하게 당겨진 멘탈의 끈이 툭 끊어지는 순간, 수만 번 다듬어온 자동화된 신체 움직임은 거짓말처럼 멈춰 서고 회전 축이 완전히 무너지며 허공을 가르게 된다. 그야말로 제한된 시간 속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최고의 선수는 이 아슬아슬한 압박 속에서 어떻게 절벽을 피해 완벽한 퍼포먼스를 만들어낼까.

 

비결은 결과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적 불안의 게이지가 임계점을 넘지 않도록 오직 현재의 동작에만 시선을 고정하는 데 있다.

 

결승전의 중압감을 이겨내는 우수한 격파 선수는 전광판의 순위표나 흘러가는 경기 시간을 바라보지 않는다. 오직 내가 디뎌야 할 매트의 촉감, 공중에서 찢어발겨야 할 표적의 중심 같은 '과정'에만 의도적으로 주의를 집중시킨다.

 

"시간은 부족하고 순위는 걸려 있지만, 내 몸은 이 궤적을 기억하고 있다"는 강력한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 작동할 때, 뇌는 주저함을 버리고 근육에 폭발적인 신호를 보낸다. 불안을 초집중의 에너지로 치환해 절벽을 도약의 발판으로 바꾸는 극적인 순간이다.

 

결국 격파물이 시원하게 깨지기 직전, 선수의 머릿속에서 먼저 깨어지는 것은 '순위를 뒤집어야 한다'는 조급함과 '다칠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파편들이다. 의심이 깨진 자리에 내 몸에 대한 확신이 들어설 때, 몸은 굳지 않고 가장 부드럽고 강력한 궤적을 그리며 뻗어 나간다.

 

우리의 삶도 이 아슬아슬한 결승전 매트 위와 많이 닮아 있다. 내 점수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면접장의 마지막 질문, 기업의 사활이 걸린 프레젠테이션, 단 한 번의 기회로 인생의 순위가 바뀔 것만 같은 결정적인 순간들. 우리 역시 삶의 시계추 위에서 주변의 시선과 결과에 대한 중압감으로 수없이 조급해하고 주저한다.

 

결과가 눈앞에 아른거리고 마음이 불안할 때, 처방은 명확하다. 내 안의 의심을 먼저 깨부수라는 것이다. 압박감이 몰려올 때 심장이 터질 듯 뛰는 것은 내 몸이 최고의 수행을 내기 위해 에너지를 모으고 있다는 신호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지적 불안을 키워 스스로를 절벽으로 밀어 넣지 말아야 한다. 순위가 정해지는 압박 속에서도 내가 지나온 오랜 노력과 준비의 과정을 믿고 과감하게 발을 내딛을 때, 우리 앞을 가로막던 단단한 벽은 마침내 호쾌한 조각이 되어 흩어질 것이다.

 

[무카스미디어 = 전민우 교수 = 경희대학교 태권도학과ㅣ yesjmw@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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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우 교수 (경희대학교 태권도학과)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태권도학과 조교수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태권도학전공 조교수
KHU-SPLab 지도교수
세계태권도전문트레이너협회 대표
대한장애인펜싱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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